[기자의 눈] 반복되는 부업 사기, 방치된 구조

[중앙통신뉴스]“영상만 보면 돈을 준다”는 문구는 더 이상 단순한 기망성 광고 문구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SNS 알고리즘 노출 구조, 메신저 플랫폼의 익명성, 가상계좌 유통 체계, 그리고 제도적 관리 공백이 결합된 조직형 금융 범죄의 출발점으로 기능하고 있다.
지난해 급증한 이른바 ‘부업 알바 사기’는 단순히 개인의 부주의로 환원하기 어려울 만큼 고도로 설계된 범죄 구조를 갖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 문자 메시지,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의 부업 광고를 통해 피해자에게 접근한 뒤, 라인(Line)·텔레그램과 같은 해외 메신저로 접점을 이동시킨다. 이후 소액의 보상을 실제로 지급해 신뢰를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발판으로 점차 고액 입금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범행을 확장한다.
특히 모든 입금 절차에 ‘30분 이내’라는 시간제한을 부과함으로써, 피해자가 주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거나 상황을 숙고할 기회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점이 이 범죄의 핵심적 특징이다.
이 범죄의 핵심은 심리적 통제다.
“중간 출금은 불가능하다”, “당신이 포기하면 다른 참가자들이 피해를 입는다”, “지금 멈추면 지금까지의 자금은 모두 소멸된다”와 같은 표현들은 피해자의 합리적 판단 능력을 단계적으로 무력화하고, 범죄 구조에 대한 자발적 순응과 지속적 협조를 유도하는 심리적 통제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이와 같은 반복적 언어는 피해자의 인지적 판단을 왜곡하고 공포와 죄책감을 동시에 자극함으로써, 스스로 범죄 행위에 가담하도록 만드는 심리적 강제 수단으로 작동한다.
개인을 집단에 묶는 순간, 탈출은 불가능하다
사기 조직은 일정 단계에 이르면 피해자를 4~5인 규모의 이른바 ‘미션 그룹’으로 편입시킨다. 이는 단순한 운영상의 조치가 아니라, 집단 책임을 전제로 한 심리적 구속 장치를 형성하기 위한 의도적 설계다.
개인의 이탈이나 중단 결정을 곧바로 ‘타인의 손실’과 연결시키는 구조가 형성되는 순간, 피해자는 자율적 판단과 선택의 여지를 상실하고 범죄 구조에 사실상 고착된다.
출금이 지연되거나 차단되는 사유는 언제나 새롭게 제시된다. ‘데이터 오류’, ‘시스템 복구’와 같은 명목은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그에 따른 ‘복구 비용’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복구 비용의 일부를 수당으로 지급하거나, 해당 비용을 기존 금액과 합산해 일괄 출금하겠다는 약속이 제시되지만, 이는 모두 허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이미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르는 금액을 투입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결국 중단을 선택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모든 자금이 소멸 된다는 공포가 작동하면서, 피해자는 손실을 만회하려는 심리에 이끌려 더욱 큰 금액의 추가 입금을 감행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대체로 은행 영업 마감 이후부터 심야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전개된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금융기관의 즉각적인 확인·차단 기능과 외부 개입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는 시간대를 의도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사기 이후, 또 다른 피해가 기다린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사기 피해가 발생한 이후의 국면이다. 피해자들은 마지막 희망에 매달리듯 인터넷 검색을 통해 ‘동일 사건 피해금 회수 성공’을 전면에 내세운 변호사 광고에 노출된다. 절박한 심정으로 해당 법률 사무소를 찾은 피해자에게는 수백만 원대의 선임 비용이 제시되고, 그 과정에서 ‘전문 탐정’, ‘해외 서버 추적’과 같은 표현이 동원되며 신속한 대응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실제로 이루어지는 조치는 법원에 대한 형식적인 서류 접수 대행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으며, 이후 실질적인 대응이나 소통은 사실상 단절된다. 그 결과 피해자는 최초의 사기 피해에 이어, 제도적 무대응과 구제 절차의 공백이 중첩되는 삼중의 구조 속에서 사실상 고립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이는 범죄 피해 이후의 보호·회복 체계가 작동하지 못하는 구조적 한계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왜 이 구조는 반복되는가? 이와 같은 범죄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는 원인은 비교적 명확하다.
첫째, 플랫폼 책임의 구조적 부재다. SNS 기반 광고는 사실상 제한 없이 확산되고 있으나, 허위·기망성 부업 광고에 대한 사전적 검증과 사후적 책임 부과는 극히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둘째, 금융 차단 체계의 대응 지연이다. 피해 신고가 접수된 이후에도 가상계좌와 이른바 대포통장은 신속하게 교체·전환되며, 실질적인 지급 정지나 자금 동결 조치는 시차를 두고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셋째, 사기 이후 단계에 대한 감독 공백이다. 범죄 피해자를 대상으로 ‘회수 대행’이나 ‘성공 사례’를 전면에 내세운 광고 시장에 대해서는 관리·검증·제재를 포괄하는 제도적 장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적 공백은 범죄의 진입, 확산, 2차 피해까지를 하나의 연속된 생태계로 고착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여 피해자를 제도의 보호 대상이 되기보다는, 문제 해결의 과정에서 끝내 배제되고 방치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이제는 물어야 한다. 왜 피해자는 수천만 원의 재산적 손실을 입고서도 끝내 “기다려 달라”는 말만을 반복적으로 통보받아야 하는가.
왜 동일한 범죄 수법은 구조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선제적으로 차단해야 할 시스템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가. 왜 사기 범죄가 종결된 이후의 시장마저 또 다른 기만과 착취의 공간으로 전락하는가.
이 문제는 결코 개인의 주의 부족으로 환원될 사안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관리·감독 체계가 제 기능을 상실한 결과다.
국회와 금융당국에 요구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도성 캠페인이 아니라, 즉각 작동하는 제도적 개입이다.
먼저 ,SNS·메신저 기반 부업 광고에 대한 사전 심사와 플랫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일정 금액 이상 반복 입금이 발생할 경우 자동 경보와 즉시 지급 정지로 연계되는 금융 차단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 사기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성공 사례’ 홍보와 회수 대행 서비스에 대해서는 등록제 도입과 감독 강화를 통해 2차 피해를 차단해야 한다. 그리고 야간 시간대에 집중되는 단시간·고빈도 이체에 대해서도 금융 이상 징후 탐지 기능을 고도화할 필요가 있다.
“영상만 보면 돈을 준다”는 말 뒤에서 무너지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그 밤 이후 피해자에게 남는 것은 빚과 죄책감, 그리고 제도의 공백이다. 이제 그 공백에 답해야 할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