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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지금 그 사람은...민종기 前 화순부군수

기사입력 2015-09-01 오후 5:53:59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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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잊혀 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커다란 사회적 사고나 감동적 이슈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에 잊혀 질 권리가 없다.

▲민종기 前 화순부군수

그 연장선상에서 바라보는 민종기 ‘행정법무연구원’ 원장은 화순지역 사회에서는 결코 잊혀 질 수 없는 비중 있는 인사다.

화순부군수로 재임하던 2012년도는 지역 갈등 요인이 많았었다. 특히 군수가 유고됐던 시기에는 ‘친환경광역단지’ 허가를 내주면서 해당지역 의원과 간격이 커지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의 행정적 법률적 판단이 맞았다는 법원이 판결이 뒤늦게 나오기도 했다.

친환경광역단지 허가를 둘러싸고 민 부군수는 지역 농민들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었기에 소신행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따라서 적법한 절차에 의한 허가 행위였는데도 해당지역 군의원이 "30년이 넘게 쌓아온 자신의 공직생활에 부담을 남겼다"고 술회했다.

때문에 온갖 억측과 한순간에 무너진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법적판단을 구하게 되었고, 따라서 민형사상 책임을 묻게 되었다. 법원은 민 부군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고, 해당 군의원에게 벌금형과 손해배상 판결이 확정되었다. 따라서 일정부분 명예가 회복되었으나 아직까지 아픈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밝혔다.

또 민 원장은 그 무엇보다도 본격적인 문화융성시대를 대비하여 국내 최초로 고향인 화순에 300억 규묘의 ‘중국황실 고대도자박물관’ 건립 추진이 무산된데 대하여 크게 아쉬워했다.

민 원장은 2년여에 거쳐 국도비 지원 약속과 함께 전문가들의 타당성 용역도 마쳤었다. 도자기 기증협의는 물론 중국3대 박물관(북경 국가박물관.상해박물관.정덕진 박물관) 공식방문이 이루어졌었다.

타당성 용역 전문가들과 함께 중국 관요도자 본고장인 경덕진시와는 ‘상호공동연구.도자교차전시.인적교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화순군-경덕진시 MOU’체결까지 마친 상태에서 추진동력을 잃게 된 일은 큰 아픔이었다고 토로했다.

그 이후 민 부군수는 전남도 ‘의정지원관’으로 자리를 옮기고 1년 후 명퇴를 했다. 그는 곧바로 선출직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다. 고위직 간부로는 드물게 지역정치에 입문했다. 자신의 고향이자 재직했던 화순군의 발전을 염원하면서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그의 정치 입문 첫 일성은 오명이 가득한 지역에 “민심의 종소리를 울려서 행정의 안정을 통한 자신의 역량을 쏟아 붇겠다”며 야심찬 도전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정치입문은 기초 단체장 정당공천폐지, 약속을 어긴 새정치민주연합의 기형적 경선 진행이 막판까지 이어져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지역사회에서는 그의 행보와 관련, 정치권에 들어선 만큼 권토중래를 할 것이라는 주변의 시선을 훌훌 털어내 버렸다. 또 다른 도전에 나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문영역인 ‘행정법무연구원’을 설립했다.

광주광역시 지산동 법원가에 행정법무와 관련한 사무실을 개원한 것이다. 다소 생소한 행정법무 사무실이었지만 개원 1년 만에 단단한 토대를 구축했다.

민 원장은 ‘개발행정, 도시행정, 문화재분야, 지역계획분야’의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다. 거기다 도청 서기관 시절부터 도의회 지원 분야, 농림.수산, 환경정책, 에너지, 공업행정, 사회복지 분야 등의 전문영역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이렇듯 광범위한 행정업무를 오랫동안 처리하면서 축적된 행정경험과 법률 지식을 사회에 환원하고 봉사하는 길로 접어들었다.

행정법무연구원을 개원한 후 그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인근의 역량 있는 변호사·세무사·법무사·행정사와 업무협조관계를 유지하며 내실 있는 행정법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다.

특히 민원인 상담에서부터 사건 분석, 관계 법리 검토, 최적대안 모색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구제서비스를 제공해 민원인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쌓았다. 현재는 관과 민의 갈등 조정능력이 탁월해 사건의뢰가 넘쳐나고 있다는 주변의 평가다.

▲ 뉴스메이커로 새롭게 부상

민 원장은 그동안 화순지역에 거주하면서도 소통하는 측면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민 원장이 새로운 뉴스메이커로 부상됐다. 자신의 전문 영역인 행정 분야가 아닌 고문화 유물수집과 소장가로서의 전국적인 인지도가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수많은 ‘유물 소장가’ 가운데서도 유독 그의 인지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그 요인을 따라가 봤다.

먼저 그가 수집한 유물들은 하나같이 고대의 역사를 새로이 써야 될 정도로 사료가치가 높다. 또한 현존한 역사서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는 인류의 유물들을 다량 소장하고 있는 까닭이기도 했다.

 
전설속의 흑피옥 서울대 북경대.옥스퍼드대 측정결과 1만년전 유물로 밝혀짐 (민 원장 소장) 

 
1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되는 전설속의 ‘흑피옥 문명’ 에서부터 근대에 이르는 국보급 문화유물을 조금씩 공개하면서 뉴스메이커로 부상한 것이다.

최근 인터넷 언론사인 ‘뉴스메이커’에서는 민종기 행정법무연구원장과 장시간  인터뷰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소개했다. (아래는 뉴스메이커 원문발췌)

민 원장은 오랫동안 국내 고문서들을 중심으로 한 유물을 수집해왔다. 민 원장이 그동안 수집한 유물들은 방대하다. 고문서, 서화류, 간찰류만 하더라도 무려 4~5천여 점에 이른다.

이 중에는 상당수가 중요한 사료 가치를 지닌 것들로 평가되고 있다.
 

유수 언론에 보도에 따르면 민원장이 소장한 유물중에는 조선시대 암행어사가 임금에게 보고한 문서들의 경우 역시 선(先)시정 조치, 후(後) 임금께 보고한 것으로 관료가 백성의 어려움은 뒷전에 두고 개인의 이익을 취해 징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유물이 소개되고 있다.

민 원장이 보유하고 있는 자료의 경우 의미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 조선시대 임란이후의 역대 영의정 친필 편지도 거의 빠짐없이 수집이 되어 있다. 역대 대통령의 진묵을 포함하여 독립운동가, 의병장의 친필도 부지기 수이다.

또 한집안 대대로 물려온 민초들의 애환이 담긴 무더기 자료들도 보이는대로 수집하였고 인근 조선대학교 고전연구회 도움을 받아 1500여점을 리스트화 하였다.

한편, 민 원장은 “암행어사가 마패를 관인으로 도서(圖署)를 한 자료 가운데에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요시한 효(孝)와 관련하여 가슴을 울리는 조사기록이 많다”며 “이런 살아있는 사료에 근거하여 후세 ‘효’ 교육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집대성한 자료로 만들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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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하 기자 (ikbc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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