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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희 기독칼럼]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의 눈물(눅 19:41~48)

기사입력 2017-04-09 오후 6:53:2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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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돌교회 이재희 담임목사] 오늘 말씀 제목은 ‘예수님의 눈물“입니다. 과학적으로 눈물은 약간의 염분을 포함한 수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물의 근원은 사람의 심령 깊은 곳에서 나옵니다. 심령에 따라 영혼을 더 좋게 하는 눈물과 우리의 영혼을 망치게 하는 눈물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핍하고 정치가 혼란스럽던 당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입성하여 가장 먼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심령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아주 심한 통곡을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도 예루살렘과 다르지 않습니다.

 

▲ 해독제 되신 예수님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입성하던 당시 예수님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성전 장로들과 제사장, 서기관들이 모여 율법으로 예배하던 성전이었습니다. 나라가 부패하고 잘못된 것은 근원적으로 하나님의 재단들과 목회자들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먼저 성전을 찾아가신 것입니다.

 

성전의 제사장이나 장로들이나 서기관들이나 백성들을 보면 구별된 곳인지 교회인지 세상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예수님이 영적으로 봤을 때 완전히 황폐해지는 사건을 그 당시에 본 것입니다.

 

예수님은 왜 그런 곳에 찾아가셨을까요? 예수님은 부패해버린 그 곳에 청결운동을 하기 위하여 가셨습니다. 우리가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해독제가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신의 것을 해독제가 있듯이 우리의 영혼, 영혼을 해독하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영혼 우리의 생명의 해독 우리의 죄악을 해독해 줄 분은 점도 흠도 티도 없는 피조물이 아닌 창조주 예수님 하나님만이 해독제 이십니다.

 

▲ 약속을 성취하신 예수님

 

약속의 성취를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 430년, 4대만에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우리 영혼 우리의 생명의 해독 우리의 죄악을 해독해 줄 분은 점도 흠도 티도 없는 창조주 예수님 하나님만이 해독제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인간 아담이 범죄했기 때문에 어린 양을 죽여 가죽옷을 입혀 세상으로 보내셨습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 때문에 피를 흘렸기 때문에 누군가가 피를 흘려야만 해독이 됐습니다.

 

근본과 질서의 하나님은 이미 창세기 3장 15절에 예언된 말씀, 여자의 후손 발 뒤꿈치를 상하게 하리라는 그 말씀이 바로 우리 예수님을 오심을 예언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몸을 빌려 예수님은 잉태 하셨습니다.

 

인성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것은 나를 대신해 그 분이 수난을 당하러 오신 겁니다. 죄인 된 몸으로 오신 겁니다. 그것이 내 몸입니다. 내 죄악입니다.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헤롯을 책망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정치인을 책망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교육자들을  책망하러 오신 것이 아니에요. 사회를 향해 지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제사장 예배를 집례하는 주의 종들을 향하여 이곳에 책망하고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오신 겁니다.

 

▲ 예수님 눈물의 의미

 

예수님께서 하늘의 권위와 권세를 가지고 말씀하시며 그 상들을 둘러엎으시고 독사의 자식이라 책망하셨습니다. 결국은 구석구석에 하나님의 성전에 제사장들과 백성들을 보니 다 화인 맞은 양심이었습니다. 화인 저주의 인, 영원히 저주를 받는 자들을 보며 예수님이 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보면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히 눈물과 통곡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또한 공생애 기간 죽은 나사로를 향해 나오라 하시며 통곡했습니다. 예수님의 동정심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에 예수님은 나흘 만에 나타나셨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사흘 만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간으로 보았습니다. 이 사상을 깨트리기 위해 우리 예수님이 전혀 불가능한 나흘 만에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린 것입니다. 그런 영광을 위해서 나흘 만에 가셨지만 사람들은 원망하며 인간의 계산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성을 가졌던 믿음을 초월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 누이들과 동네에 엄청난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삼 액체를 흘렸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의 삼액체가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흘린 눈물, 이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던 것은 바로 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흘리셨고 인류를 위해서 흘리셨고 성전을 향해서 흘리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눈물을 흘려야 될 자가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과 환경을 위해서만 울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이 나라와 백성과 열방을 향해서 주의 종들을 향해서 교회를 위해서 울고 계십니까?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울리셨듯 우리도 이제는 주님을 대신해서 울어야 될 때가 바로 이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 속에 진심으로 깨달을 것은 우리 예수님이 원하는 것은 영혼을 위해 울고 교회를 위해서 울고 나라를 위해 울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인류 백성들을  위해 울고 우리는 영혼을 위해서 울어야 되는데 하나님의 탄식의 이 소리를 이때 우리가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눈물 흘리고 이 십자가를 지고 기쁨과 감사로 힘있게 달려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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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박종하 (ikbc88@han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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